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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8(화)목회자세미나-변화산의 신앙 체험/이은환 목사
관리자 2019-10-08 추천 1 댓글 0 조회 520

오직 예수! 예수님만이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경험해야 하는 체험적인 믿음입니다.우리의 신앙에 체험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은혜의 체험이 많은 성도일수록 견고한 신앙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기독교는 철학이나 종교적인 의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만나는 믿음의 체계입니다. 교회는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모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모임입니다.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어 변화산의 사건은 매우 중요한 신앙 체험입니다.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세 제자는 여기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신앙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올라가신 산은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갈릴리의 다볼산이라고 하였지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가까운 헤르몬산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헤르몬산은 안티레바논 산맥에 위치하며, 시돈 사람들은 스닐산이라고 불렀고, 아모리 사람들은 시룐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시편에서는 한번 헐몬이라고 하였는데, 주로 구약에서는 헤르몬이라고 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모세는 이 헤르몬산을 ‘시온’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헤르몬산은 해발 약 2,850m로 산봉우리에는 항상 눈이 덮여 있으며, 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요단강으로 흘러 내려 갈릴리바다를 이루고 그 물은 이스라엘 온 땅을 적셔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산에 오르신 우선적인 이유는 1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절“엿새 후”라는 때를 알리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은지 6일 후라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마 16:13-28까지는 한 가지 사건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베드로의 놀라운 신앙고백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뭐라고 하는가에 대해 제자들에게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놀라운 답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리고 덧 붙이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정말 베드로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신앙고백을 했고, 주님께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본격적으로 장차 일어날 십자가 사건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항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께서 무서운 질책을 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정말 베드로는 감히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로 막고 나섰습니다. 주님께 상상할 수 없는 책망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엿새후”라는 말은 이 일련의 연속된 사건이 일어난 후 6일 뒤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산에 오르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놀라울 정도의 신앙고백을 하고서도 십자가 말씀을 듣자 넘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상태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갈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17절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려주셔서 하늘의 비밀을 알게 됐던 베드로가 이번에는 사탄이라고 질책을 받게 됐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가 사탄에게 휘둘리기도 하는 제자들을 데리고 그대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을 더 훈련시키시기 위해 이번에 특단의 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강력한 반대를 꾸짖으시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자들도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16:24)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한 마디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말로 다할 수 없는 낙담과 절망을 맛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간이 6일쯤 흘렀습니다.

 

(17:1) 갑자기 예수님께서 제자들 중 세 사람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위로 올라가셨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모세를 시내산 위로 부르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자기들을 짓누르던 낙심과 절망이 벗어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변화산 사건을 보다 자세하게 들여다보겠습니다. 도대체 변화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일은 무엇일까? 이 일들은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 이런 물음을 가지고 본문을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변형되셨습니다.(2) 본문 2절.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막9:2-3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예수님께서 산 위에 오르시자 세 명의 제자들 앞에서 갑자기 그 모습이 변화되셨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옷이 희어졌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빨래를 잘해도 그렇게 희게 될 수 없을 정도로 희게 변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천상의 존재들을 표현할 때 사용하곤 했습니다. 한 예를 들어보면

막 16:5를 보면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 천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저 천상의 모습으로 변화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는 이 장면을 설명할 때 보다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그러니까 예수님의 옷이 변화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얼굴에 갑자기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이해하려면 묵시문학적 표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 12:3을 보면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의인들이 장차 저 천국에서 그 얼굴에서 빛이 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저 천국에서처럼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는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변형되신 것은 세 제자들에게 장차 저 천국에서 보게 될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막9:1입니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낙심 중인 제자들에게 이 땅에서 장차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를 미리 보게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변화산 사건은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세 명의 제자들에게 저 천국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비록 잠시지만 미리 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크게 낙심하고 절망 중에 있는 제자들에게 십자가 뒤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저 천국을 바라보고 현재의 고난을 이기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나가다 보면 때로는 고난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감당키 힘든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눈을 들어 저 천국을 바라봐야 합니다. 천국의 소망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예>이태리 밀라노에는 고딕 건물을 대표하는 두오모 대성당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성당에는 들어가는 문이 3중으로 되어있습니다. 3중문 각 문마다 중요한 메시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첫째 문 위에는 장미 화환이 새겨져있고 이런 글귀가 새겨져있습니다.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

둘째 문 위에는 십자가가 새겨져있고 이런 글귀가 새겨져있습니다.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 셋째 문 위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있습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맛보는 즐거움은 잠깐 지나갑니다. 그래서 저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의 즐거움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겪는 고통 역시 잠깐 지나갑니다. 그래서 저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의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2.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셨습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세 제자 앞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변형되신 예수님과 두 사람이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깜짝 놀랄만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는 1500년 전 사람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900년 전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이 나타나서는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너무 놀라서 이 세 사람을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 모세와 엘리야는 왜 나타났을까요? 그리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우선 모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신 18:1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 지니라”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메시야가 일어날 것인데 그는 모세와 같은 영적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야의 원형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모세가 나타났다는 것은 율법이 약속해 온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율법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야시라는 점을 증언하기 위해 등장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엘리야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구약의 예언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말 4: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장차 엘리야는 메시야의 선구자로 와서 메시야의 도래를 알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예언의 대표자로서 메시야 도래를 알리는 메신저의 전형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것은 예언이 일관되게 전했던 장차 오실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예언을 대표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야시라는 점을 증언하기 위해 등장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변화산 위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하여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신 장면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일관되게 성경말씀에서 약속되고 예언된 메시야이심을 믿도록 확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어떤 대화를 나누셨을까요? 누가는 눅 9:31에서 이 대화 내용을 간략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예수님과 두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사건은 이미 모세로 대표되는 율법에서 증언하고 있고 그리고 엘리야로 대표되는 예언에서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변화산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율법과 예언 곧 성경을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해 오신일이 모두 성경대로 이루어진 일이고 또한 앞으로 하실 일 들 모두 성경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 속에 기록된 것들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습니다. 본문 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제자들은 갑자기 산 위에 구름이 몰려와 그들이 구름 속에 덮이게 됐습니다. 저들은 신비한 자연현상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구름기둥으로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시내산에 올랐을 때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재하셔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지금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들 앞에 임재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산 위에 구름이 몰려와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이 때 저들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두 가지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유대인들에게 버림 받고 로마인들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될 것이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특히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⑵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을 경청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저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더라도 그 말씀을 믿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명령을 하시든지 그 명령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저들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말씀을 하시더라도 그 명령을 철저하게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 섰습니다.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온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친히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제자들은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로 거듭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사울이 바울로 변했던 것처럼,

 

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평범했던 모세가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변했던 것처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로렌스 수도사가 평생을 평범한 평수도사로 지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이야기를 써놓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려고 노력한 이야기를 써놓았습니다. 주방에서 허접한 일을 할 때도 샌달을 수선할 때도 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려 애썼습니다. 마침내 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살게 됐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심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면 우리는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우리 밖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것을 체험하지만 나중에는 사람들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진 것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려고 늘 연습하며 살아야 합니다.

 

4.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8절). 눅9:36절“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7:7에 보면 이 광경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제자들이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즉 거룩한 두려움에 엎드려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안수하시면서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할렐루야!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오직 예수이어야 합니다. 환상도 중요하고 음성도 들어야 하지만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만 남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의 핵심이요 종착점은 오직 예수이어야 합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도 영광 가운데 계십니다. 제자들에게 잠시 잠깐 동안 영화로운 모습을 보여주셨지만, 주님은 영원히 영광중에 거하시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변화산의 사건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벧후1:16-18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6.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에 베드로는 그 날의 사건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변화산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원의 주님이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산에서 가졌던 신비한 경험은 “그의 크신 위엄”, “지극히 큰 영광”, “존귀와 영광”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주님이 이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고난 받으실 것이지만,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려고 하십니다.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히1:3에 보면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십니다. 그리고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이런 산 위의 신령한 경험이 있을 때에 이 세상에 치우치지 않는 능력이 되고, 강력한 무장이 됩니다.

 

세 제자가 처음에는 이런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몰랐지만, 후에는 엄청난 힘이 되었고,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언하는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변화되다는 말은 ‘메타모르포오마이’라고 하는데, 신약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변형을 나타내는데 두 번 사용되었고,

 

우리 성도들의 변형에 대하여 두 번 사용된 말입니다. 예수님의 변형은 곧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과 같이 그렇게 변화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3:18에서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새번역)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고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고, 주님의 장성하신 모습을 따라 변화되어 마침내 우리도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신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구체적으로 성경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그대로다. 그곳에서 뭔가를 보고, 듣고, 느끼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들을 요긴하게 쓰시려는 뜻에서다. 어쨌든 그 후 이 세 제자들은 하나같이 초대교회에서 귀하게 쓰임 받았다. ①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기초를 닦았다.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② 야고보는 제자들 중 첫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사도행전 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③ 또 요한은 제자들 중 가장 나중까지 살아남아 초대교회를 선도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통해 성경기록을 완료했다. 요한계시록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때로 요긴한 일에 쓰시기 위해 그의 자녀들을 따로 높은 산으로 데려가시기도 하신다. 그래서 어쩌면 이 높은 산은 우리 인생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 같다. 사실 믿음의 사람들은 거의 다 예외 없이 고난의 산을 경험했다. 높은 산 오르기는 신앙인의 필수코스였다. ① 모세는 광야 40년을 양치기로 살았다. ② 다윗은 광야에서 10년을 도망자 신세로 살았다. ③ 요셉은 무려 13년을 종살이, 감옥살이하며 살았다. 그들은 그 고난의 산을 통과한 후 결국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쓰임 받았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떤가? 오늘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 올라야 할 높은 산들이 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변화산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 주님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그는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이셨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구원받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고난을 나누어 짊어져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과 은밀한 교제, 기도의 교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우리의 인격도 변화되고, 심지어 용모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산 아래 질병과 고통이 넘치는 삶의 현장으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변화산의 체험은 오직 예수님만 남는 체험이었습니다.

 

 

 

1. 예수님께서 변형되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습니다.

4.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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