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지상 최대의 사건입니다. 그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종합해보면 한쪽에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병들이 승리했다고 개선가를 부르고 있을 것이고, 예수님을 따르던 그 제자들과 무리들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떨면서 절망과 슬픔에 잠겨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제일 첫 번째 등장한 인물은 여인들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여인들의 신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주님을 만난 여인들의 신앙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을 보면 대부분 여자 성도들이 2/3 정도 되고, 1/3 정도는 남자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여성들은 약하면서도 상당히 강한 면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역할이라는 것은 주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여인들의 신앙을 보면
첫째, 최후까지 주님을 따른 신앙이었습니다.(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마 28:1)
사람이 좋을 때는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는데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며 이적을 행하시고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는 다 사라지고,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이 여인들은 끝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만일 무덤에 가다가 로마 군병에게 붙잡히면 죽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라도 바르기 위하여 찾아간 이 여인들의 신앙은 최후까지 주님을 따른 신앙이었습니다.
우리는 좋을 때나 어려울 때도 주님을 따르고, 환영을 할 때나 핍박이 있을 때도 변함없이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그러면 어떻게 해서 남성도 아닌 여성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으며 최후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요?
①너무 너무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있다면 세상 끝날까지 여러분의 신앙이 변치 않을 것입니다. 변질되지 않는 신앙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금이 귀한 이유는 변질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②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주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서 제자들에게 유대로 다시 가자고 했을 때 제자들은 주님께 ‘주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했는데, 우리에게 또 그 길로 가자고 하십니까?’라고 하면서 두려워하면서 예수님을 위하는 척하면서 그들이 오히려 두려워서 그곳에 가기를 만류했습니다.
그 때에 도마가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 11:16)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처럼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산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우리는 십자가 없는 면류관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누가복음 9:23에 보면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둘째, 돌문이 열린 기적을 체험한 신앙이었습니다.(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마 28:2)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면서 제일 큰 걱정은 돌문을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유대 나라는 땅을 파고 시신을 묻는 것이 아니라 옆에 굴을 파고 시체를 넣고 큰 돌로 막아놓습니다. 그런데 이미 돌문이 열려져 있었습니다. 무덤을 가로막은 심히 큰 돌문이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열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앞에 가로막힌 인간의 힘으로 열 수 없는 심히 큰 돌문이 열리게 해주셨습니다. 죄악으로 인해 가로막힌 신령한 눈이 열리게 해주셨습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 누구나 다 있는데, 믿음의 눈으로 다시 한번 더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돌문을 열어놓았습니다. 육안으로 막힌 것을 영의 눈을 떠서 믿음으로 바라볼 때 기적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자녀문제 혹은 직장문제, 사업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이 있다 할지라도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영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부활의 주님을 만난 자들이었습니다.(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마 28:9)
참된 부활의 의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순간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첫 번째 은혜는 평안이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 떨던 그들을 주님이 아시기 때문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가지 근심 된 일들로 머리가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하며 육신이 피곤한 자가 있다면 ‘주여, 평안을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평안이 없으면 먹을 것, 입을 것, 권세, 명예, 지위 다 가져도 그것이 마음에 안정을 주지는 못합니다.
칼 바르트는 ‘인생들의 최후의 목표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부활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5,26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 두려워했던 이 여인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넷째, 부활의 주님을 증거한 자들이었습니다.(눅 24: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눅 24:9)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 여인들은 열한 사도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이 여인들로부터 시작하여 제자들과 온 인류에게 전해져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믿는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아직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우리 이웃과 민족 그리고 온 인류에게 전해야 됩니다.
부활의 주님을 이미 만난 자들은 모두 선교사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곳은 모두 선교지입니다. 아직도 부활의 예수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 여인들의 신앙을 본받아 환난과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키며 최후까지 주님을 따르고, 영의 눈을 떠서 모든 장애물이 제거되는 체험을 하며, 부활의 주님을 만나 부활의 주님을 온 인류에게 기쁨으로 증거하며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최후까지 주님을 따른 신앙이었습니다.(1)
둘째, 돌문이 열린 기적을 체험한 신앙이었습니다.(2)
셋째, 부활의 주님을 만난 자들이었습니다.(9)
넷째, 부활의 주님을 증거한 자들이었습니다.(눅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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