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이사야9: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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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
기쁜 성탄절에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세요.
Mery Christmas! 기쁜 성탄에 복 많이 받으시오.
크리스마스(Christmas)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은 그리스도(Christ)와 마스(mas)의 합성어입니다.
"마스"란 말은 라틴어로 "예배, 경배"란 뜻입니다.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왜 교회는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경배 합니까?
그 이유는 2천 년 전 유대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기 때문에 성탄하신 날을 기념하여 축하하고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자연인의 "나심"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인류의 구세주의 탄생을 축하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절에 당시 세계 패권을 휘두르던 나라는 '앗수르'였습니다. 이미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 앞에 무참하게 짓밟히고 정복당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는 그 여세를 몰아 남 유다를 침공해 왔습니다. 물론 남쪽 유다도 앗수르의 대군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이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남 유다를 다스리던 웃시야 왕까지 죽고 말았습니다.
웃시야 왕의 죽음으로 인해 남 유다는 정치적인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백성들은 더욱 큰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앗수르의 무서운 군사들이 유다를 침공해 들어왔는데, 백성들이 믿을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민족의 지도자가 없는 상태에서 나라를 통째로 앗수르의 손에 넘겨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백성들의 마음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주변 어느 나라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주변 나라들이 동맹관계를 맺고 앗수르와 맞선다 하더라도 앗수르의 세력을 대항할 힘이 되지 못합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믿을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애굽 밖에 없었습니다. 몇 천년을 세계 최대 강국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애굽만이 유일한 도움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애굽에도 기댈 수가 없습니다. 애굽조차도 그 힘이 극도로 약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다로서는 어느 곳 하나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북 이스라엘처럼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절망감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희망을 보여주십니다. 바람 앞에 등불처럼,
곧 멸망할 것만 같은 유다 민족을 구원할 메시야를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계신다는 말씀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난국을 풀어갈 해답은 인간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소망이 없는 나라, 꺼져가는 등불같이 멸망의 위기 앞에 서 있는 나라 유다를 그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의 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있는 유다의 왕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6절"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한 아기가 태어날 것인데, 그 아기가 이 민족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어깨에는 세상의 모든 정치세력보다 더 큰 위엄과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분은 '기묘자'이며 '모사'입니다. 어느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시고 행하실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적인 권위를 가지고 통치하시는 분이 아니라, 신적인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사람을 보고 상황을 볼 때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구석에서나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위해서 보내주실 그분은 희망이 없어 보이기에 절망의 어두움 가운데서 떨고 있는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시는 분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백성들에게 기쁨을 되찾아 주실 분입니다.
그분은 바로 온 인류의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한 아기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오늘 읽은 구약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히 성취된 내용들입니다.
본문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2000년 전에 아기 예수로 태어나신 그리스도는 흑암에 살던 백성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춰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2000년 전에도 이사야 시대의 유다만큼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예언을 멈춘 지 400년이나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선지자가 그리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으니까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는 흑암과 어둠으로 표현된 바로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정치적인 상황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생활 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백성들이 압제와 수탈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셨습니다. 죄악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신음하던 백성들에게 천국을 보여주신 세상의 참 빛이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두움 가운데 앉아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참 빛이 세상에 오셨지만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어둠은 근본적으로 빛을 싫어합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그 자리를 빛에게 내어주고 물러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셨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메시야를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참 빛이신 아기 예수를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분을 싫어했습니다. 어둠이 빛을 쫓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세상 어둠의 대명사인 헤롯왕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군사를 풀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오신 참 빛을 거부하기 위해서 아기 예수가 태어나신 베들레헴 지경의 2살 아래 모든 아이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는 영적 어둠의 대명사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참 빛이신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어둠의 세력들이 늘 틈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 빛이신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그늘에 앉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의 자리는 어떻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좌절하게 만듭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인생의 뒷골목에 서 있다고 생각되신 분은 없으십니까?
이 땅에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님은 절망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어두운 터널 안에 있는 심령에 희망의 빛줄기를 비춰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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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시는 분이십니다.(3-4)
본문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어깨에서 무거운 멍에를 벗겨주시는 분이십니다. 고통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고 우리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도 허전한 가슴을 쓸어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만족함을 얻으려고 해도 세상 그 어디에서도 만족함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저 공허한 모습 그대로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재물에 취해보기도 합니다. 죽도록 돈을 벌어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공허함이 없어질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돈을 은행에 쌓아놓고 있다 하더라도 가슴 속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쾌락의 늪에 빠져들어감으로 그 공허함을 채워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쾌락은 그 순간 뿐입니다. 그 순간을 벗어나면 더 큰 구멍이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루의 삶을 마감하고 잠자리에 누워서 가만히 하루를 되돌아보면 가슴 뿌듯할 때가 더 많습니까? 아니면 뭔지 모를 공허함이 가슴 가득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가 더 많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신 삶에 만족하십니까? 지금까지 너무 헛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좌절감에 빠져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행복할 것만 같은 희망을 품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보다는 남편이나 아내가 메꿔줄 수 없는 텅 비어 있는 가슴 때문에 괴롭지 않습니까? 아니 그 비어버린 가슴을 체념하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밖에서는 참된 인생의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 곁을 떠난 탕자가 먹을 것이 없어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려 하지만,
그것마저 구할 수가 없어서 굶주릴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세상 그 무엇으로 그 구멍뚤린 가슴을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영적인 빈 가슴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합당한 충만한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죄악으로 물들어 그 은혜와 축복을 잃어버린 인간을 위해서 아기 예수를 우리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우리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기 예수를 통해서 세상에서 채울 수 없는 풍요로움과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을 회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주신 한 아기는 평강의 왕이셨습니다.(6-7)
본문 6-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이름은…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아기 예수는 평화가 없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죄와 처절한 싸움을 해야하는 우리네 인생에 하늘의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늘의 평화를 이 땅에 심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가 탄생했을 때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아기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늘의 평화가 채워집니다.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심은 그를 기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가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이 땅에 평화를 만드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4-18)
이 땅에 평화는 전쟁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는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땅에는 평화가 없어 보였습니다. 앗수르의 발말굽 아래서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전쟁을 치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아기를 주시는데, 그 아기를 통해서 세상에 평화(평강- 살롬)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평화, 평강은 어떤 정치적인 지도자 한 두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전쟁과 싸움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오늘날 국제정세를 보십시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팔레스틴과 이스라엘의 전쟁,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화보다는 싸움을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모두 평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 속에서는 평화보다는 전쟁과 싸움의 방법으로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함으로 국제사회에 평화를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우리나라도 다른 어느 사회보다 평화가 필요합니다. 이념이 다른 남과 북이 군사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는 모든 국민이 원하는 바일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평화를 지켜내고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로 오신 그분이 십자가에서 이미 평화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그분의 길을 따를 때에만 세상에는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그 어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놀라운 사건이 바로 아기 예수의 탄생소식입니다. 그래서 전쟁과 싸움으로 지쳐있는 이 세상에 아기 예수의 탄생은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것입니다.
여러분,
- 아기 예수의 오심은 어두움과 흑암 가운데 살던 백성들에게 구원의 빛, 생명의 빛이 비춰진 사건입니다.
- 아기 예수의 탄생은 허무함과 절망 가운데 사는 우리들에게 참된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사랑의 사건입니다.
- 아기 예수의 탄생은 전쟁과 싸움이 난무한 세상에 참된 평화를 가져온 사건입니다. 아기 예수를 통해서만 세상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아기 예수를 마음에 모신 사람만이 참된 평강(살롬)을 경험하며, 그 평강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을 덧붙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세상에 구원과 생명의 빛을 비추게 하시는 것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하십니다.
그분의 열심이 반드시 그 일을 이루십니다. 허무와 절망 가운데 사는 백성들에게 참된 만족과 기쁨을 주시는 것도 여호와께서 하십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것도 '여호와의 열심'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우리를 향한 당신의 열심만으로 충분히 그 놀라운 사역을 이루실 수 있는 분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좋은 소식을 내 가슴에만 묻어두어서야 되겠습니까? 이 기쁜 소식은 온 세상이 들어야 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좋은 소식 -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고, 그 복음 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경험한 복음, 우리를 변화시킨 그 복음을 세상에 알게 해야 합니다.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은 단순히 즐기며 노는 날이 아니라,
세상에 빛을 주시고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시며, 참된 평화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날임을 세상에 선포해야 합니다.
2000년 전에 우리를 위해서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초라한 말구유에서 세상의 외면을 받으며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아기는 세상의 빛이셨습니다.
공허한 인간들의 가슴 속에 하늘의 기쁨과 하나님의 만족을 가져다 주신 분이셨습니다. 전쟁과 싸움이 난무한 세상에 참 평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셨고, 십자가를 통해서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3. 그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번 성탄절에 누구를 만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열심'의 증표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를 꼭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만나면 캄캄했던 삶의 문제들에 광명한 빛이 비춰질 것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공허하고 만족이 없던 삶에 하늘의 기쁨과 만족으로 채움받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만나면 우리의 마음에 천사들이 노래한 찬양처럼 평강이 강물처럼 밀려올 것입니다.
2023년도에 맞는 이번 성탄절에 우리에게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의 생이 바뀌어지고, 모든 부족한 것들에 하늘의 은사로 채움받는 놀라운 은총의 날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만족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 하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주신 한 아기는 평강의 왕이셨습니다.
3. 그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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