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부활주일 설교-이은환 목사
- 관리자 2022.4.18 조회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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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회복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중에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채로 살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빌과 글로리아에게 찾아가셨던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부활절 아침에 부활의 주님께 경배하고자 나아온 여러분에게도 찾아오셔서 만나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나옵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학자들에 의하면 누가와 또 한 제자라고 합니다.그들이 예루살렘에서 25리 떨어진 엠마오라는,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은혜 충만한 제자들이었지만 실의와 좌절감에 빠져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나사로를 살리시고,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는데...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실 줄이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에라도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실 줄 알았어."
무덤까지 다 확인한 후 고향으로 내려가는 두 사람은 근심된 얼굴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 사이에 끼어드셨습니다. "너희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당신은 요즘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건을 혼자만 모르시오. 이스라엘을 속량할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소."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말씀을 더디 믿느냐?" 하시며 성경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순간 마음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날이 저물어 어느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눈이 어둡고, 마음이 어둡고,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는 두 제자에게 주님께서 떡을 떼어 주시면서 축사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두 제자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증거가 무엇일까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 눈이 밝아집니다.(31)
본문 31절에서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주)밝아져-dianoivgw(디아노이고) =닫혀진 것을 '완전히 열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32절에 풀어주실 때에와 같은 단어이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떡을 떼어 받는 중에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지금 그들 앞에 계신 분이 예수님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눈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과 영의 눈입니다.
육신의 눈은 사물의 모양과 거리, 광도 및 색상을 봅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은 안목의 정욕을 좇아 우리로 범죄 하기 쉽게 합니다.
반면 영의 눈은 영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말합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사울은 아나니아의 기도를 받고 그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진리의 세계에 눈을 뜹니다.욥은 고난 뒤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하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뒤 제자들은 눈이 밝아지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 속에서 급선무 되어져야 할 일이 있다면 우리의 눈이 밝아져 예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일입니다.
스데반처럼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도 영안이 열려 천국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였습니다.눈이 열리니까 돌에 맞아 죽는 상황에서도 두렵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고, 천사처럼 얼굴에 빛이 났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넘치고 돌을 던지는 원수들이 불쌍하게 보이고 용서가 되었습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적국의 군사가 몇 겹으로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엘리사에게 달려가 보고했습니다. "아아 이제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런데 엘리사는 전혀 당황하지 않습니다. 담담하게 말합니다."우리와 함께 한 자가 훨씬 더 많다." 하고는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그러자 하나님이 이 청년의 눈을 여셨습니다.
영적 눈이 열려 바라보니 불 말과 불 병거와 하늘의 군사들이 산에 가득한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다메섹 도상으로 나아가는 사울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주님을 본 것처럼 우리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주님이 이 곳에 임재 해 계시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스데반처럼 게하시처럼 영적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영적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영적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를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큰 역사를 하시는 것을 바라보며 살기를 원합니다.
2. 열정의 회복이 이루어 집니다.
본문 3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에 이 두 사람이 그동안 체험한 것을 나누면서 했던 이야기입니다.주)풀어주실 때에- dianoivgw(디아노이고) =닫혀진 것을 '완전히 열다'를 의미한다
뜨겁지-kaivw(카이오) =불켜다, 불타다, 불태우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열정이 회복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더디 믿어지는 상태를 벗어나 믿음에 이르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의 두 제자가 그랬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열정이 식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던 그 열정이 식어버리고 만 것입니다.그래서 더 이상 가던 길을 계속 갈 수가 없었습니다. 쓸쓸히 돌아서서 낙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정이 식으면 하던 일을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비전을 품고 꾸어오던 꿈도 사라져버립니다. 짓다가 만 성채처럼 우리의 인생이 그저 황폐해지고 쓸쓸해져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본문의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에 열정을 회복했습니다. 그들의 속에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그들의 마음에 불을 붙여주셨기 때문입니다.성경을 보면 주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다 그 마음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열정이 용솟음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람이 그랬습니다. 나이 75세에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음에 불이 붙었습니다. 새로운 열정이 용솟음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나이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부르심을 따라나섰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사람입니다. 바닷가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마음에 불이 붙었습니다. 새로운 열정이 용솟음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배도 그물도 버리고 그 자리에서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불을 붙여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꺼져가는 마음의 불을 다시 타오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꺼져가는 장작더미에 기름을 부어 활활 타오르게 하듯이, 우리의 식어가는 열정을 다시 타오르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이 부활의 아침에 여러분의 열정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3. 사명이 회복되었습니다.
두 제자는 이제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사도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34절)이 두 사람도 감격하여 자신들이 길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체험과 주님이 떡을 떼어 주실 때 눈이 밝아져 알아보게 된 것을 확신 가운데 전하였습니다. 부활의 예수를 만나 눈이 열리고 마음이 뜨거워지자 복음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는 베드로의 예수 부활 목격과 그 외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부활 소식을 들었으나 믿지 못하였습니다.
엠마오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난 후 당장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자기들처럼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부활 소식을 외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났을 때가 분명 오후였습니다. 거의 두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면 걷던 그 길을 다시 두시간이나 걸어야 했습니다.
다시 밤길을 두 시간이나 걸어서 예루살렘을 향해 간다고 하는 사실은 우선 마음적으로 대단히 먼거리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피곤하기 때문에 집에서 쉬고 싶었을 것입니다. 밤이 지나고 다음 날, 날이 훤히 밝으면 가고자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이 열리고 마음이 뜨거워진 그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밤길을 걸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외친 것입니다.
그렇게 부활의 예수를 전할 때 그 소식을 듣고 또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 인생이 변합니다. 삶의 자세가 바뀝니다.안목이 열리고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 가운데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 아주 많습니다.
그중에 고 백낙준 박사님의 선친은 머슴이었고, 아무 소망도 없었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났고 교회에 충성을 할 때 선교사의 눈에 그의 아들이 띄었고, 데려다가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백낙준 박사님은 한국의 거목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사명이 생긴 겁니다.주님이 맡겨주신 사명! 그래서 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져 복음을 전합니다. 순교하면서도 기뻐했습니다. 바울의 고백대로입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겁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겁니다. 주님의 복음을 위해 사는 겁니다.
그렇다고 모두 목사 되고 선교사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러면 영원히 빛나는 인생이 됩니다.
➜호주의 국립공원에 가보면 곳곳에 안내문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이를 주다가 적발되면 벌금 100불을 내야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왜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했습니다. 야생동물이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지면 야성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먹이활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게을러지고 사람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굶어 죽습니다. 그래서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야성을 잃어버린 야생동물과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람에게 길들여진 야생동물들이 스스로 먹이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사명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예>웰치(Welch) 음료회사를 아시죠.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그 창업자는 웰치입니다. 그는 본래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체검사 결과 아내가 아프리카 기후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체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탈락한 후 그는 실망한 채 고향에 돌아갑니다. 방황하다 깨닫고 결심합니다. 선교사로 가지 못하면 좋은 일로 돈을 벌어서 선교사들을 후원하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웰치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였는데, 부업으로 알코올이 없는 성찬용 포도즙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 사업을 물려받아 주님만 위해 돈을 쓰리라 결심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 결과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수입의 절반을 선교를 위해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그런데 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명을 알면서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아예 이것이 사명이라는 것조차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셨습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있을 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말씀을 통해서 만나기 바랍니다. 주님과의 가까운 교제를 통해서 만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부활의 예수님이 계시는 교회에서 주일마다 마음을 열고 예배드리므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부활의 예수님과 동행하는 축복의 사람이 회복의 사람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눈이 밝아집니다.(31)
2. 열정의 회복이 이루어 집니다.
3. 사명이 회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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